32호사적인 경험, 사건, 순간에서 발견된 생태 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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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호 사적인 경험, 사건, 순간에서 발견된 생태 감각
2021-10-14 ~ 2021-11-14
Z씨의 사담
이상한 광경이었다. 버스를 타려고 빠르게 걷고 있었다. 시선의 속도도 걸음을 따라잡느라 종종거리던 참이었는데, 낯선 느낌의 무언가가 나무에 붙어 있었다. 몸을 돌려 가까이 가면서 직관적으로 알았다. 이전에 본 적 없는, 내가 놀라운 순간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 말이다. 나무껍질 색깔의 곤충, 더위로 가뜩이나 힘든데 시끄럽게 울어대는 통에 귀가 예민한 날 괴롭혔던 귀찮은 벌레였던 매미. 느닷없이 그 존재와 생애가 눈에, 구태의연한 내 인식에 확 박혔다.
Y의 이야기
2006년 한강에 출몰한 ‘거대 돌연변이 괴물’ 영화가 개봉과 함께 빠르게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많은 주변 사람들은 영화를 중심으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영화계에서는 호평이 쏟아졌다. 나 역시 그 분위기에 휩쓸려 영화를 관람했는데,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이유로 영화 ‘괴물’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여전히 영화의 첫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당시에 나름대로 의미 있게 하던 작업이 있었다. 작업의 주재료는 페인트. ‘그게 뭐 어때서?’ 묻겠지만, 페인트로 작업을 하면 붓을 씻기 위해 페인트보다 더 유해한 각종 신나를 사용한다. 2000년 용산기지 어딘가에서 ‘포름알데히드’를 하수구에 버렸듯, 나도 하수구에 신나를 버렸다. 그 이후로도 몇 년간 그런 작업을 더 이어갔다.
죄책감 때문일까, 아니면 작업의 지향이 조금 달라져서일까. 이제는 유형의 생산물은 최소화하며 작업하고 있다. 무언가를 만들어야 할 때는 되도록 다시 사용할 수 있거나, 잔여물이 거의 남지 않을 만큼만 만들고, 가능한 지구에 오래 남지 않는 재질로 선택하고 있다. 작업의 방식이 달라지니 삶의 방식도 달라진다. 되도록 사는 곳 가까운 곳에서 작업과 일을 하며 놀아나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 시간들에 진 부채를 가벼이 하고 싶어 다른 방식으로 실천을 이어가고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안드로메다로 이어주세요.
우리는 ‘전환의 시대’, ‘기후 위기’라는 선언적이고 다소 요구적인 말보다는, ‘아주 사적인 경험’, ‘작은 사건’, ‘순간과 발견’ 등에서 생태를 더 감각합니다. 32호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안드로메다’에서는 사소한 경험이라도 생태에 대한 작은 발견이나 감각의 계기, 일상의 작은 실천과 징후 등을 나누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