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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교육 현장 스스로가 가진 질문과 고민 등을 풀어보고 서로가 서로에게 답해주는 댓글공론장입니다. 정답은 없어요. 그동안 활동하면서 느낀 다양한 생각과 고민들, 아이디어, 해결의 실마리를 자유롭게 꼬리로 이어주세요.

35.5호침을 뱉어라

35.5호 침을 뱉어라

2022-11-01 ~ 2022-12-31

침을 뱉어라


“말은 내 창자에서 자라나 간과 심장을 지나 뜨거워졌고 내 기도와 구강을 통해 자유를 획득하여 나아가고 있구나. 나는 그 말을 향해 승리의 건배를 든다.” - 파블로 네루다
 

독백


매개자 연수지원체계란 더 가르쳐줄 거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예술교육실천가들은 언제까지 배워야 하는가. 몇 가지 트랙을 돌면 얼마큼 성장할 수 있을까. 열심히 달려도 매번 제자리인 것은 아닌가. 왜 항상 부족하다고 보는가. 나는 지역 분권화에 따른 변화와 개선 방안을 생각하고 또 생각해야 하는 추진위원단에 합류함으로써 큰 꾀를 내야 하는 곤란함을 겪고 있다. 작가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서 잔꾀만 쓰겠다고 들어온 세계인데, 일이 너무 많아졌다. 그동안 나는 제도적으로 얼마나 길들었길래, 이런저런 테이블에 앉아 스피커 행세를 하고 있단 말인가. 꿈다락을 할 때만 해도 심사위원들에게 따지고 저항했던 나는 어디 가고 이 모양 이 꼴인가. 나는 얼마나 이율배반적이고 오만해진 것인가. 나는 문화 바이러스에 중독된 것들을 털어내고 싶다. 뭔가를 마련해주기 위해 애쓰는 전문위원이 아니라 무엇이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지 한 명의 예술교육실천가로서 들끓는 가래침을 뱉어내고 싶다. 우리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기 이전에 더럽혀진 옷부터 씻어야 한다. 아래의 편견 가득한 생각들은 내 눈살을 찌푸리는 풍경들이며, 동감 또는 반감할 독자들의 자유분방한 입담이 더해지면 좋겠다. 서로 묻고 물고 또 물고 늘어지는 댓글-대댓글을 고대하며 달이 차고 기우는 보름 동안만 운영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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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야생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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귓속말


나는 자주 눕는 버릇이 있다. 분명 눕기 전에는 잠깐만 누워서 생각 좀 해보자는 것이었지만, 언제나 잠의 악령에 사로잡히고 생각은 줄행랑을 친다. 몸이 잠의 식민지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땐 화들짝 놀라곤 하지만, 뇌파에서는 곧바로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신호음을 보낸다. 불온한 잠투정은 일어나 일 좀 해보려는 나의 거룩한 의지를 비웃으며 지그시 밟아 버린다. 위이잉~ 위잉~ 윙윙윙. 신경을 거스르는 방해꾼, 모기가 나타났다. 친분이 없는 녀석의 귓속말은 섬뜩하다. 이불을 뒤집어 쓰고 위헙을 모면해보지만, 텁텁한 공기가 호흡곤란을 일으킨다. 게으른 모드의 몸뚱이를 일으켜준 모기 한 마리에게 고마움을 표해야 할까. 하지만, 도무지 친해질 수 없는 이놈이 그늘진 어디선가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음을 나는 안다. 먹히느냐 죽이느냐. 집구석 생태환경은 불안불안하다. 요즘 나를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무엇인가. 문화 불감증이다. 집 밖에서는 행사와 축제가 미친 듯이 열리고 있다. 마치 모기처럼 주변에서 윙윙거린다. 그런데, 나는 왜 안물안궁인가. 문화가 포화상태를 넘으면 마비 현상이 일어난다. 가보든 가보지 못하든 모기 물린 부위처럼 한동안은 간지럽고 부어오르는 괴롭힘을 당해야 한다. 문화가 없는 곳이 유일한 피난처다. 나는 또 침대를 찾아가 격렬하게 안긴다. 귀를 막고 눈도 감아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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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알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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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 전문가가 되는가


어딜 가든 사람은 많지만, 사람이 없다는 말을 듣는다. 예술단체도 없고, 실무자도 없단다. 이것은 한 상태를 말해준다. 좋은 예술단체는 떠났고, 실력 있는 실무자는 남아있지 않은 현상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이 의미 없는 무정형의 덩어리로 보인다는 것이다. 평범성이 모든 영역을 점령하여 괴짜와 독특함은 꼭꼭 숨죽여 있는지도 모른다. 우리 세계는 고만고만한 사람들로 가득 채워지고 있다. 누군가는 튀어 오르려는 사람을 꾹꾹 누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수면 위로 올라와 존재를 뿜뿜하는 사람들도 있다. 전국구로 불려 다니는 전문가들이다. 이들은 문화예술교육이 생성될 때부터 있었고, 지금도 어디를 가나 존재하며, 앞으로도 만나게 될 존재들이다. 이런 생태지형 때문에 이쪽 공모에서 떨어져 저쪽 공모를 지원했는데, 그 얼굴을 또 마주했다고 하소연하는 단체에 나는 어떤 변론도 할 수 없었다. 언제까지 심의를 받고, 검사를 받아야 할까. 이것이 미래를 기대하는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들며 자괴감과 불만을 낳고 있다. 그렇다. 구조적 실망감이 바로 사람이 없는 이유다. 우리의 미래는 발전할 수 없다거나 부자가 될 수 없다기보다는 반복적이고 권태롭기에 떠나는 것이다.

공룡의 꼬리를 쫓는 강아지 아이콘
[공룡의 꼬리를 쫓는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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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료증


프로그램 참여 수료증을 들고 기념사진을 찍는 장면을 보면 짜증이 올라온다. 이토록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또 있을까. 두꺼운 포장 커버에 둘러싸여 큼지막한 낙인을 자랑하고 있는 종이 쪼가리,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알 수 없다. 대학이 학위 장사를 하듯이 문화재단은 수료증으로 호객행위를 하고 있다. 표창장 하나를 놓고 세상의 온갖 소음과 폭력을 보았으면, 이것이 얼마나 오염된 문화 양식인지 알아챘어야 하는 것 아닌가. 수료증은 기관이 권위를 세우는 낡은 방식이다. 이것은 그 어떤 가치도 증명해주질 않는다. 그 어떤 믿음도 심어주지 않는다. 그 어떤 자긍심도 높여주지 않는다. 금박으로 치장한 천박한 장식일뿐이다. 같은 맥락에서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증은 능력주의 사회가 낳은 무책임하고 부정한 열매다. 현장에서 통용되는 화폐가 아니다. 증빙서류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기에 그 무엇도 될 수 없는, 있으나 마나 한 이상한 등급 분류표일 뿐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되돌아올 질문은 한 사람의 경험과 감수성 그리고 노력의 성과 등은 무엇을 통해서 가늠할 수 있을 것인가 일 테지만, 평가 그 자체가 문제라는 관점으로 지표를 없애면 안 되는가. 관리 - 촉수들이 점점 더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멋진 말을 어디에서도 실행하지 않고 있다. 애당초 시험, 등급, 증빙은 비인간적이다. 불평등 기원론의 하나이고 어린 왕자의 별을 좀먹는 바오밥 나무이지 신봉할 것이 못 된다. 얼어붙은 경쟁사회가 녹아내리지 않은 곳에서 무슨 문화를, 예술을, 교육을 만들어간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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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땟국물 먹은 눈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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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이꾼들


미래에 중독된 사람들은 기술이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꿔놓을지 설명하면서 내일을 준비하라 채근하지만, 정작 인간 자체가 어떻게 변하게 될지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예를 들어, 왜 4차산업혁명을 대량 실업의 세상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새로운 일자리 창출 이전에 노동의 붕괴를 숨기는 자들은 누구인가. 제조업의 귀환과 신재생에너지의 콜라보가 뒤쫓아오던 개발도상국을 다시 낭떠러지로 밀어내는 무역장벽이라고 왜 말하지 않는가. 선진국들의 기후환경 윤리가 경제 지배 이데올로기가 되고 있다는 사실에 연막작전을 펼치는 곳은 어디인가. 정치적 언어는 기만적이다. 온라인콘텐츠 예술교육은 언택트 연애도 괜찮다는 듯이 촉지적 느낌을 거세해서 만남 자체를 무감각하게 만든다. 줌 화면은 몸에서 머리를 분리하고 작은 모니터 속으로 납작하게 구겨 넣고는 차이가 없다고 우겨댄다. 메타버스는 일단 시시하다. '디아블로'나 '리그 오브 레전드' 같은 화려한 게임 환경에 적응한 아이들이 볼 때 거창한 이름의 메타버스는 하품이 절로 나오는 수준밖에 되지 못한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데, 어른들만 호들갑을 떨고 있다. 이 저급한 재현의 기술(미술사적 맥락에서 볼 때)은 불안한 팬데믹 시기에 접촉과 접속 사이의 틈새시장을 교묘히 파고들어 허영심을 부추기는 야바위일 뿐이다. 멱살을 잡고 뒤통수를 후려치고 싶지만, 가상공간에서 춤을 추며 나를 농락하고 있다. 또한 아바타는 현존성을 부정하게 만들어 다중인격체들의 정체모를 만남을 증식할 뿐만 아니라 가상공간조차도 부동산 투기사업이 되었고, VR은 신체감각을 시뮬라시옹적으로 치환해 놓고 있다. 우리는 개미지옥에 빠져버렸다. 아이들의 몸은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운동성은 억압받고 인지 부조화로 신체는 갈 곳을 잃어 구토와 어지럼증을 감내하며 순응하고 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시간이 없어 순응하고 있다. 저항은 1도 없이 길들고 있다. 우리의 문화와 예술과 교육 그리고 삶까지도 위협받고 있다. 그냥 있는 그대로 머물고 싶은 마찰력은 허락받지 못하고 있다. 나는 이제야 디지털 - 중력의 강력함을 감지한다. 최근에 본 디지털 미디어 교육은 노인층마저 계몽하고야 말겠다는 듯이 편리와 필요를 역설하며 장비를 쥐여 주고 어플을 쓰라고 웃으며 칼을 숨기고 있다. 모든 연령층에서 세뇌와 게임 유저로의 강제 이주 그리고 돈의 갈취가 무섭게 진행 중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우리는 스마트해지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기억력 감퇴를 겪고 있다. 또한, 넘치는 정보와 눈속임 기술 때문에 진짜를 닮은 가짜와 가짜를 닮은 진짜가 뒤섞여 뭔가를 제대로 알아보기 힘든 세상으로 내던져지고 있다. 도-망-쳐-라!

말 얼굴 아이콘
[트로이 목마를 모방하는 A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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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체스(임상빈)
교육이 예술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환경을 탐구하는 교육예술실천가.